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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그림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by 오늘큐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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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기계주의와 아카데미 미술에 반발하여 19세기 말 '아르누보'가 등장하였습니다. 아르누보는 섬세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 등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으며, 20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였습니다. 이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화가로 알폰스 무하가 있으며, 그의 작품은 현대 작품에도 다양하게 스며들어 볼 수 있습니다.

Les Saisons 4 (1896)

무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을 사랑했습니다. 청년 시절, 파리에서 유학하며 잡지와 광고에 삽화를 그리는 등 힘든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한 극장 포스터를 맡게 되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포스터를 몰래 뜯어가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무하의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La Dame aux Camelias(from Les Maîtres de l’Affiche)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글자체, 화려한 장식 등 무하의 화풍은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로 불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Reverie du soir, from Times of Day (1899)
Monaco monte carlo (1896)
La Primevere (1899)
La Plume (1899)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간 무하는 그곳에서도 엄청난 환대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강의도 하고 다양한 전시회도 열었죠. 그런데 1910년 그는 이를 뒤로하고 돌연 체코로 돌아왔습니다. 이때부터 무하는 체코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연작 '슬라브 서사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앞선 작품들과 전혀 다른 성격의 그림을 그린 것은 무하가 평소 가지고 있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정신과 연결됩니다. 그는 예술가라면 민족과 조국을 위한 작품들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Svantovit Celebration On The Island Of Rügen (1912)

안타깝게도 무하는 비극적인 말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1939년 독일 나치가 프라하를 침공하였으며, 무하는 이때 수차례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79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Alphonse Mu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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